사진 혹은 예술적 지지체


김소희
뮤지엄한미연구소 선임연구원









이지안은 사진을 주된 매체로 삼아 설치, 조각, 영상 등 타매체와 결합하는 작업을 선보여왔다. 그녀는 사진과 오브제를 재구성하여 사진으로 포착하거나, 사진을 사진으로 다시 재현했다. 사진을 입체적 조각의 형태로 구축했고, 비디오, 오브제와 접목시켜 설치로 변형시켰다. 현대미술의 다양성 안에서 사진을 폭넓게 다루고 있는 작가는 사진 매체의 본질을 리얼리즘이나 자연주의의 바탕에 두려는 태도에서 한참을 벗어나 있다. 이지안의 작품 세계를 살펴보는 것은 포스트미디엄 시대에 사진에 대한 새로운 방향성과 가능성에 대해 모색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2016년 《Delicate Romance》 연작은 사진을 매체 탐구의 대상으로 삼은 작가의 초기작이다.
<Delicate Romance 02>의 사진은 날카로운 선인장의 가시와 유약하고 투명한 풍선이 서로 만나 터질 듯 터지지 않는 순간을 포착했고, <Delicate Romance 04>에서 접시에 담긴 생선은 주사기 호수로 물을 수급 받는 장면을 연출했다. 선인장과 풍선, 주사기와 생선 등 서로 상충하거나 이질적인 사물의 조합은 마치 초현실주의자들의 선구자격인 로트레아몽 (Lautréamont)의 시구, “수술대 위에 우산과 재봉틀”처럼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사진이 아니라, 사진을 사진으로 재현한 사진 즉, 메타 사진이다. 작가는 정물 사진을 찍고 그것의 평면 위로 오브제를 재구성하여 이를 다시 이차원의 평면 사진으로 귀착시켰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작가는 사진을 ‘보이는’ 그대로 ‘재현’하지 않고, ‘사진-오브제-사진’이라는 다중의 레이어로 ‘구축’했다. 초현실주의의 데페이즈망을 떠올리게 하는 이러한 기법은 허구와 허위의 픽션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사실적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바로 사진의 기호학적 특성 때문이다. 미국의 찰스 퍼스(Charles S. Peirce, 1839~1914)의 기호학적 분류에 따르면, 사진은 지시 대상과 닮았다는 점에서 도상(icon)이지만 지시 대상과의 물리적인 연관성 속에서 생겨났다는 점에서 지표(index)이다. 그러니까 지문이 특정인의 존재를 증표하고 발자국이 어떤 사람의 흔적을 증언하는 것처럼, 사진은 지시 대상의 실존을 증명하기에 사람들은 사진을 왜곡 없는 진실로 받아들인다. 선인장의 ‘가시 사진’ 위에 안전하게 놓인 투명한 풍선을 우발적 장면인 양 제시하면서, 작가는 사진의 객관성을 문제 삼고 사진의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사진은 우리가 바라보는 사물이지만, 롤랑 바르트가 『밝은 방』에서 주장한 것처럼 “사진은 항상 비가시적이다. 즉 사진은 우리가 보는 것이 아니다”라는 지점을 작가의 주관적 개입을 통해서 반문하는 것이다.
메타 사진의 형식을 바탕으로 사진의 진실성을 재고하려는 작업은 2017년의 《일상과 환상》 그리고 2018년의 《따뜻하고 푸른 물결》 시리즈에서 이어진다. 다만 작가는 실내에서 바깥으로 시선을 확장시켰다. 도시의 산보객으로서 작가는 도시를 곳곳에 표류하며 ‘익명의 장소’와 ‘보편적 사물’을 사진으로 수집했다. 작가는 도시의 재개발 지역에서 버려져 있는 일상적 사물을 포착하거나, 인적 드문 변두리 지대에 적재된 건축 자재들을 응시했다. 물신숭배에 길들여진 스펙타클한 도시의 이면을 들추고 표면에 균열을 가하는 방치된 골목, 소외된 바닥, 후미진 거리를 작가의 카메라는 클로즈업했다. 색 바랜 슬레이트 지붕, 내부가 드러난 콘크리트 벽도 작가는 도시의 소외된 장면으로 포착했다. 작가는 이러한 풍경을 사진과 오브제, 평면과 입체의 조합으로 재구성하여 다시 사진으로 완성했다. 다만 전작에서 보여준 연극적이고 네러티브적 요소는 배제했고, 보다 조형적이고 추상적 형태에 주목했다. 부산의 레지던스에 머물며 작업했던 <따뜻하고 푸른 물결 가까운 바다 9>는 공장 앞 적재된 둥근 원통형의 자재들을 찍은 사진을 형광 낚시찌와 함께 재구성하여 다시 촬영한 사진이다. 사진상에서 건축자재들은 실제 크기의 수십, 수백 배가 축소된 반면, 이후 추가된 형광 낚시찌는 실제의 크기로 놓여 있기 때문에 사물 간의 크기가 전복되어 있다. 작가는 사진 사이에 개입해 사물 간의 형태를 전복시키는 가벼운 전략을 이용하면서, 사진이 현실을 순수하게 재현하는 도구일뿐만 아니라 반대로 너무나 쉽게 현실을 과장하고 왜곡하고 조작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실내 작업과는 다르게, 《일상과 환상》, 《따뜻하고 푸른 물결》 사진에는 ‘장소성’이 개입한다. 작가는 사적 혹은 공적으로 관계를 맺게 되는 장소를 사진으로 재현하고 그 주변에서 수집한 사물과 함께 재배치한다. 이때 실제의 사물은 장소의 자국, 자취로서 그 장소의 지표이며, 장소에 대한 실존의 징표이다. 작가는 주로 삶의 터전에서 소외된 풍경, 중심으로부터 밀려난 주변의 공간에 주목했다. 1980년대 이후 미증유의 재개발과 함께 이루어진 급격한 도시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도심의 외관뿐만 아니라 삶의 풍토까지도 바꾸어버렸다. 정서를 나누고 삶을 공유하는 공간으로서 장소는 오로지 자본과 개발의 논리에 의거해 엄정하게 구획 짓는 지역으로 재정의 되었다. 세속적 가치가 지배하는 도시개발은 정비의 필요성보다는 시장의 이익을 따랐으며 빈부의 격차를 부추겼고, 삶의 질의 불균형을 수반했다. 급격한 도시화의 모순 속에서 오래된 것, 하찮은 것, 낡은 것은 미적으로 혹은 기능적으로 정교하게 계획된 장소로부터 분리, 배출되는 것으로 여겨졌고 우리 일상 곳곳에 가려지거나 잊혀지거나 방치된 채 잉여물로 남겨졌다. 예컨대 <일상과 환상, no. 11>(2018)은 사회적 맥락에서 떨어져 나와 밖으로 내던져진 비천한 아브젝트(abject-형용사로, 비참하고, 비천하고, 내버려진 것을 의미함)를 소재로 삼았다. 그 쓰임을 알 수 없게 망가진 목재의 구조물, 뒤집힌 의자, 망가진 문짝, 쓰레기 더미 등은 본래의 맥락에서 탈각되어 외부로 버려진 사회의 잉여물이다. 작가는 홀대받는 아브젝트를 사진의 대상으로 삼고, 인공조명을 사진 위에 덧붙여 환상이라는 문맥 안으로 그 의미를 옮겨 놓는다. 작가는 이 역시 사진의 왜곡, 조작, 연출의 한 장면임을 숨기지는 않는다.

<강남아파트, 일상과 환상>(2018)은 아브젝트 사진을 장소 특정적 설치로 다시 ‘재현’한 것이다. 작가는 버려진 사물의 사진을 바탕으로 실제의 오브제들을 수집해 재구성했고, 철거를 앞둔 재건축 아파트의 낡고 허름한 방 한 편에 사진과 마주 보게 설치했다. 다시 말해, 철거장소의 지표로서 내던져진 사물은 사진으로, 이렇게 재현된 사진은 다시 설치물로 재현되었다. 그 때문에 실제의 사물과 이미지의 관계는 재현을 재현하는, 모방의 다층적인 단계를 거치면서 무엇이 원본이며 무엇이 모방인지 그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모호해진다. 사물을 재현하고 동시에 사물로 복제된 사진은 대상과 재현의 모호한 관계 속에서 매체간의 경계를 넘나들고 그 의미를 확장한다. 이지안의 사진에 있어서 ‘재현’은 원본과 모방, 문화와 자연, 사진과 대상의 관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재등장하게 되는 주요한 개념이다. 방치된 장소에서 발견한 야생 식물과 인조 식물(혹은 사진)을 서로 대치시키고 결합한 2020년 프로젝트 <인공자연>이나 특정한 장소에서 바라보는 현실을 사진적 재현과 구분, 비교하고 있는 2021년 프로젝트 는 현실과 모조 세계의 접점을 뫼비우스 띠처럼 반복 재생산하면서 진실과 허구에 대해 계속해서 질문한다.
사진을 타매체와 결합하고 충돌시키는 매체 실험적 태도는 2018년 부산 홍티아트센터에서 열린 《따뜻하고 푸른 물결》에서 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나타났다. 작가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폐허 된 장소나 고립된 지역을 오가면서 자연 풍경을 사진, 영상, 설치의 다층적인 면으로 재현했다. <밸런싱>은 우연히 발견한 깃대를 소재 삼아 첫째, 실제의 사물로서 깃대, 둘째, 사진의 평면적 재현으로서 깃대, 셋째, 영상의 입체적 재현으로 담은 깃대와 같이 하나의 사물을 세 가지의 매체로 해체하고 다시 하나의 구축물로 종합해 보여주었고, <8개의 바다 조각> 역시 사진과 영상을 통해 평면과 입체로서 재현된 바다를 수평의 굴곡진 설치의 형태로 재현했다. 1970년대 조각이 좌대를 제거하고 예술의 공간에서 벗어나 비로소 현실과 예술의 경계를 넘어섰듯이, 《따뜻하고 푸른 물결》에서 사진은 화이트큐브의 자율적 공간, 액자라는 미학적 형식에서 탈피해 관람자가 위치하는 전시의 공간 안으로 진출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여기, 사진의 자율적 기호가 해체되는 이 지점에서 사진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거나 기억하는 ‘재현’의 매체가 아니라, 사진 자체가 하나의 오브제이자 재현의 대상으로 제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20-2021)의 와 같이 현대미술작가를 오마주하는 최근의 작품에서 사진의 해체적 태도는 더욱 과감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의 조각가 에바 헤세(Eva Hesse, 1936~1970)의 미니멀 조각과 드로잉에서 영감을 얻어 사진을 조각의 한 물성으로 이해하는 작가는 초기 메타 사진 작업을 발전시켜, 더욱 추상적이고 구성적인 형태로 나아간다. 철사, 실, 철조망, 사진 등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여러 사물을 이용해 사진을 입체적으로 드로잉 하는데, 자르고 덧붙이고 또 칠하고 지우는 등 다양한 미술의 형식을 자유롭게 구사하여 대형 설치물이나 비정형의 사진 혹은 사진 조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이지안의 작업 세계에서 사진은 사진적 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들고, 재현이라는 모방의 속성을 탐구하게 만들며, 타매체와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진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게 만든다. 다양한 매체와의 관계 속에서 사진을 해체하고 확장해 나가는 이지안에게 사진은 자율적 매체 자체라기보다는 기록하고 재현하고 포착하는 사진의 기술을 바탕으로 작업의 근간을 형성하는 예술적 지지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23)


『사진예술』, 2023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