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된 미, 환상의 진리 주장
(개인전 : 일상과 환상)


이성민 (철학자)




“마룻바닥에 앉아 아미 앤드 네이비 잡화점 상품 목록에서 사진들을 오려 내고 있던 제임스 램지는 어머니의 말을 들은 순간 더없는 기쁨을 냉장고 사진에 쏟아부었다. 그 사진에 환희의 테두리가 둘러졌다.[1]

어렸을 때 가위로 잡지에 실린 사진의 사물 형상을 오려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어린 소년 제임스 램지가 냉장고 사진을 오리듯. 그것은 조심스러운 부분을 거쳐야 하는 정교한 작업이다. 왜냐하면 실제 냉장고가 아무리 견고하더라도, 사진으로 찍힌 냉장고는 사진-냉장고 고유의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진-냉장고 고유의 형상을 통해 냉장고를 알아본다. 이 형상을 집중해서 오릴 때 램지는 냉장고에 주목하지 않을 것이다. 종이 위 선 자체의 구성과 흐름에 주목할 것이다. 그러한 집중된 주목의 보람은 물론 말끔하게 오려진 “냉장고”일 테지만.

<일상과 환상>에서 이향안은 우선 도시의 “빈틈”을 사진으로 찍는다. 그것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외면당하는 것이다. 작가는 가령 “시가지 주변의 폐허, 어설픈 구조로 산처럼 쌓인 쓰레기 더미, 망가지고 방치된 도로의 구조물들, 엉뚱한 곳에 놓인 용도 모를 물건” 등을 찍는다. 이 빈틈들은 일상에서 미적으로 실패한 지점들이다. “썩 아름답지만은 않은 일상의 모습들”. 이향안은 어설픈 구조로 쌓인 쓰레기를 가령 어설프지 않게 새로 쌓은 후 찍지 않는다. 그렇게 할 거였으면 애당초 그곳을 찍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도시에서 이런저런 정서를 담아낼 어설프지 않은 장면을 찾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실은 정서를 담고자 했다면 저 빈틈들도 있는 그대로 이용될 수 있었다. 찍힌 사진 위에 소소한 사물을 배치하여 이를 다시 사진으로 찍는 작업 없이도. 만약 그렇게 했다면 시가지 주변의 폐허 사진은 환상을 품을 수는 없어도 슬픔을 머금을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향안은 일상=현실에서의 실패를 사진 평면 위에서 미적 구성에서의 실패로 재해석하며, 궁극적으로 “미적 균형이 정비”된 작품들을 내놓는다. 작품들은 구성의 미적 균형 감각에 의해 정교하게 조절되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어떤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어떤 견고한 결정과 시선이 이러한 재해석을 낳은 것일까? 우리의 꿈은 “결코 외면하기 힘든 우리의 일상 위에서 자라났다”는 자명성을 붙잡는 결정. 환상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오히려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

이 시선은―가위를 든 램지의 눈이 오려내기를 하는 동안 냉장고를 잠시 잊어야 하듯―일상의 사물을 잠시 평면 위에 배치된 구성으로 재해석한다. 그러한 재해석 속에서 일상의 실패는 잠시 미적 구성의 실패로 전치된다. 이 실패를 보충해주고 미적 균형을 되찾아주는 것은 다시금 일상에서 가져온 “아주 쉽게 시각적 환영에 이르게 하는” 작은 사물들이다. 잠시의 재해석이 가능하게 하는 작업의 시간 속에서, 이 사물들은 “일상의 풍경을 비일상적 풍경으로 만드는” 임무를 맡아 배치된다.

우리는 작가의 이 “비일상적 풍경”이라는 말을 신중하게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애초에 작가가 찍은 일상은 중립적 일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미적으로 실패한 일상이었다. 따라서 “비일상적”이라는 말은 실패의 중지를 함축한다. 이향안의 작품은 일상의 실패를 중지시킨다. 그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어놓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그것은 “환상”이라고 불려야 한다. 환상은 가상적 현실에서의 성공을 뜻하지 않는다. 다만 실패의 중지가 곧바로 성공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는 진리에 대한 예술적 주장이다. 꿈의 자리를 확보하기 위한 예술의 진리 주장. 거꾸로 생각해서, 독자적 욕망의 생성이 없다고 한다면 한 개인의 자립과 그의 작품의 사적 완결이 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렇기에 우리는 그 욕망이 램지의 냉장고 사진에 어머니의 희망적인 말이 부추긴 무기력한 환희와는 다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황폐한 도시 일상의 풍경 위에 다른 위상으로 배치된 사물들에서는 저 주장과 더불어 개화된 욕망이 반짝이는 것도 같다. 그것은 정지된 시간 속에 장소 없이 뚫린 틈새와도 같아서 나를 알려지지 않은 일상의 모험으로 이끌고 갈 것만 같다. 언뜻 아름다운 구성의 완결에 동적인 부분이 없는 것 같다가도 사물들이 꿈틀거리면 정지된 시간 속 풍경도 덩달아 보조를 맞출 것만 같다. (2017)



[1] 버지니아 울프, 등대로, 이미애 옮김, 민음사, 2014, 9-10쪽.